내 인생을 되돌아보는 중인데, 일기장을 집에 두고 왔다. 아쉬운 대로 기억을 더듬어 내 발자취를 적어본다.
한적하고 편안한 동네에서 태어나 별 근심 걱정 없으면서도, 한편으론 지루한 삶을 살았다. 그러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특성화고에 가자는 친구의 꼬드김에 넘어갔다. '간호사도 나쁘지 않겠네'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간호 특성화고에 입학했다. 하지만 내가 기대했던 더 넓은 세계는 온데간데없고, 학교와 기숙사가 삶의 전부인 날들이 시작됐다. 2학년 때부터는 방학까지 반납하고 병원 실습을 다녔다. 학교는 그리 친절하지 못했고, 다들 여러 방향으로 엇나가기 일쑤였다. 나 역시 동네 친구와 호기심에 못 이겨 술담배를 하곤 했다. 2학년 끝자락에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. 아빠가 기숙사에 데려다주던 차 안에서 "공무원이 된다면 어떨까?"에 대해 한참 토론하곤 했는데, 그건 일종의 내 미래에 대한 확신을 아빠로부터 얻고 싶었던 마음이었을 것이다. 하지만 마음속 한편에서는 늘 내가 꿈꿔온 더 넓은 세계, '대학'이라는 공간을 동경하고 있었다. 그러다 3학년 중순쯤, 같이 공무원을 준비하던 친구들과 함께 교무실 옆 빈 교실로 불려갔다. 선생님 실수로 추천서 작성 기간을 놓쳤다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였다. 선생님은 꽤 미안해하며 눈물까지 흘리셨지만, 난 속으로 '대학에 갈 완벽한 구실이 생겼다'며 오히려 기뻐했다. 그렇게 우연인 듯 운명처럼 대학 입시를 치르게 됐다. 2학기에 두어 곳의 간호학과에 합격했고, 수능 최저학점을 맞춰야 하는 대학들이 남아서 틈틈이 수능 공부를 했다. 사실 이미 합격한 학교가 있다는 안도감에 공부는 거의 안 했던 것 같기도 하지만. 그해 11월 11일, 종합병원 투석실에서 첫 일을 시작했다. 그래서 수능 날에는 연차를 내고 시험을 보러 갔다. 나에게 수능이란 전날 10분 일찍 퇴근했던 기억, 고등학교 위치 때문에 집에서 1시간이나 떨어진 학교에서 시험을 본 기억, 같이 시험을 보게 된 친구와 내가 싸간 카레를 나눠 먹느라 배가 고팠던 기억이 전부다. 결국 최저는 맞추지 못했고, 미리 합격해 둔 학교 중 한 곳을 골라야 했다. 당시 옵션 A는 나름 네임밸우가 있는 학교였고, 옵션 B는 고만고만하지만 어학연수를 보내주는 학교였다. 미래를 생각한답시고 A를 골랐는데, 지금 되돌아보면 학교 이름이 월등하게 차이 나지 않는 이상 별 상관없었겠다 싶기도 하다.
대학교 입학 전까지 종합병원 일을 이어가던 중 코로나19가 유행했다. 캠퍼스 대신 노트북 화면으로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. 처음으로 치른 대면 시험은 심리학 관련 교양이었는데, 시험 범위가 무려 책 한 권이었다. 이 시험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이유는, 내가 100점을 맞았기 때문이다! 우하하. 그 뒤로 4년 동안은 시험 점수에 목을 매달며 살았다. 고등학생 때부터 이미 가고 싶은 병원이 명확히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. 강의 시간에 조는 일은 빈번했을지언정, 시험 기간만큼은 미친 듯이 공부했다. 그 와중에 학생회 활동도 하고, 틈틈이 아르바이트도 해내며 치열하게 살았다. 4학년 때는 취업 준비와 면접, 그리고 학기 시험 기간까지 겹쳐 반쯤 미쳐 살았는데, 그 폭풍이 지나고 나니 국가고시가 기다리고 있었다. 물론 무사히 합격했지만, 졸업과 동시에 전공의 파업 사태라니…. 내 인생의 큰 시발점마다 사회는 왜 이리 혼란에 빠지는 걸까? 결론적으로 지금의 나는 원하던 병원에서 나름대로 일을 잘 해내고 있다. 가끔 다른 지역에서도 치료가 어려운 환자들이 전원오기도 하는데, 그런 환자들이 내 손에 맡겨진다는 사실에 놀랍기도 하다. 비록 이제는 또 떠날 준비를 하는 중이지만!
갑자기 NCLEX 시험 접수를 하려다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적어보는 나의 일대기 끝~.